◉ “5월 광주는 위대한 촛불혁명으로 부활” “촛불은 미완의 6월 항쟁 완성시키라는 명령” (2017년 5.18 민주화운동, 6.10 민주항쟁 기념사 中)
◉ “한국 국민은 촛불혁명과 헌법의 절차를 통해 국민의 뜻을 배반한 대통령을 파면했다” (2017년 세계시민상 수상 연설 中) 
◉ “평화·정의·민주주의를 향한 장준하 선생의 의지와 충정은 2016년 촛불혁명의 불꽃으로 다시 살아났다” (2017년 장준하 선생 서거 42주기 추모사 中)
◉ “지난겨울 (국민들은) 그 추운 밤 길바닥에 앉아 촛불을 들면서 ‘나라다운 나라’ 만들기를 염원했다. (평창올림픽이) ‘치유의 올림픽’이 됐으면 한다” (올해 초 진천국가대표선수촌 방문 연설 中)
◉ “촛불혁명은 전 세계를 경탄시킨 세계사적 쾌거... 우리 ‘외교의 힘’ 되고 있다” (올해 초 신년 인사말 中)
◉ “조국의 새 정부는 해외에서도 함께 촛불을 들어준 동포 여러분의 염원으로 출범했다” (작년 7월 미국 동포 간담회 연설 中)
◉ “촛불은 위대하고, 새롭고, 끝나지 않은 우리의 미래다... 촛불의 열망과 기대, 잊지 않겠다” (작년 10월 ‘촛불집회 1주년’ SNS 메시지 中)
사진=뉴시스
청와대가 지난 6일 ‘문재인 대통령 연설문집’을 발간했다. 취임 직후부터 1주년이 되는 지난 5월 9일까지의 연설문을 모았다. 크고 작은 대내외 행사의 축사·기념사·인사말·추도사·시정연설부터 국무회의와 수석·보좌관회의 발언까지 문 대통령의 모든 공식 메시지를 묶었다. 상/하권에 별책, 말글집 등으로 구성돼 있다. 2만 부의 단행본 세트는 공공기관 등에 배포된다. 청와대 홈페이지에서 PDF 파일로 다운로드가 가능하고 전자책으로도 무료 이용할 수 있다. 대통령이 직접 육성 연설하거나 서면 배포하는 글인 만큼, 현 정권의 국정철학을 읽을 수 있는 기초자료인 셈이다.

문재인 정권은 2016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촉구한 ‘촛불집회’로 탄생했다고 자처한다. ‘촛불혁명은 위대하다’ 또는 ‘촛불정신을 계승해야 한다’는 식으로 주장해 왔다. 총 300여 편에 육박하는 연설문에 바로 이 같은 주장이 지속적으로 표현돼 있다. 각종 기념일과 관료·참모들과의 회의는 물론, 해외 동포들에게 덕담을 건네는 와중에도 ‘촛불’이 등장한다. 평창 동계올림픽 관련 메시지도 ‘촛불’로 덧칠됐다. 집권 1년 차 주요 행사 대부분에 ‘촛불집회’ 얘기가 나온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연설문 52편에 ‘촛불’ 등장

문 대통령 역대 연설 중 총 52편의 연설문에 ‘촛불’ 얘기가 나온다. 작년 5월 10일부터 10월 31일까지의 연설을 묶은 ‘상권’, 그해 11월 1일부터 올해 5월 9일까지의 연설을 묶은 ‘하권’, 취임 1년 동안의 국무회의/수석보좌관회의 석상 발언을 묶은 ‘별권’을 분석한 결과다. 청와대가 임의로 가려 뽑은 ‘대통령 말글집’은 중복 우려가 있어 제외했다. 문학적 수사나 단순 비유로 쓴 경우 또한 뺐다. 한 연설문 안에서 반복적으로 언급되는 경우는 한 번으로 쳤다.

어떤 내용일까. 시간 순서대로 보면, 작년 5월 17일 열린 국방부 순시 연설에서 처음 ‘촛불’이 나왔다. 문 대통령은 “지난 몇 달간 정치 상황이 급변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가 부러워할 만큼, 민주적이고 평화적으로 ‘촛불혁명’이 진행될 수 있었던 것도 우리 군이 튼튼하게 안보를 받쳐줬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2017년 6월 10일 문재인 대통령이 서울광장에서 열린 제30주년 6.10항쟁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사진=조선DB

다음날 열린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사와 6.10 민주항쟁 기념사에서도 ‘촛불’이 등장한다. 문 대통령은 “마침내 5월 광주는 지난겨울 전국을 밝힌 위대한 촛불혁명으로 부활했다. 촛불은 5.18 민주화운동의 정신 위에서 국민주권 시대를 열었다”고 했다. 6월 항쟁과 관련해서도 “6월의 시민은 독재를 무너뜨렸고, 촛불시민은 민주사회가 나아갈 방향과 의제를 제시했다”며 “촛불은 미완의 6월 민주항쟁을 완성시키라는 국민의 명령”이라고 했다.

‘5.18’ ‘6월 항쟁’부터 ‘10.4 南北선언’ 기념사에 일렁이는 ‘촛불’

이처럼 민주화운동 등 국가기념일 연설 대다수에 촛불 내용이 나온다. 문 대통령은 올해 2월 28일 ‘제58주년 2.28 민주운동 기념식’에서 “우리는 지난 촛불혁명을 통해 국민이 권력을 이길 수 있다는 것을 다시 증명했다. 돌이켜보면 그 까마득한 시작이 2.28 민주운동이었다”고 했다. 지난 3월 1일 ‘제99주년 3.1절 기념식’에서도 “3.1 운동으로 시작된 국민주권의 역사를 되살려 냈다. 1700만 개의 촛불이 가장 평화롭고 아름다운 방식으로 이 역사를 펼쳐 보였다”고 했다.

본 책에는 없지만, 작년에 이어 올해 광복절 경축사에서도 ‘촛불’ 얘기를 찾을 수 있다. 문 대통령은 작년 “촛불혁명으로 국민주권 시대가 열리고 첫 번째 맞는 광복절”이라고 의미를 되새겼고, 올해 “대한민국은 세계 10위권의 경제 강국에 촛불혁명으로 민주주의를 되살려 전 세계를 경탄시킨 나라”라고 강조했다.

작년 9월 26일 열린 ‘10.4 남북공동선언 10주년 기념사’에서도 ‘촛불혁명’ 얘기는 이어졌다. 문 대통령은 “(북한의 도발로) 촛불혁명으로 새로운 대한민국을 꿈꿨던 국민은 안타까울 것”이라며 “이 위기를 넘어서야 10.4 남북정상선언 정신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했다.

고(故) 장준하 선생, 문익환 목사 추도사에도 ‘촛불’이 등장한다. 문 대통령은 작년 8월 17일 “국민은 장준하와 함께 승리했다. 평화, 정의, 민주주의를 향한 선생의 의지는 2016년 촛불혁명의 불꽃으로 다시 살아났다”고 했다. 올해 1월 13일에는 “작년 23주기 추모식에서 (문익환) 목사님을 뵙고 돌아온 날 밤 광화문을 찾았다. 수천, 수만의 촛불이 별처럼 빛나고 있었다”고 표현했다.

訪美, UN총회, 평창 동계올림픽에서도 ‘촛불’ 언급

방미(訪美) 등 외국 순방 연설에도 촛불 얘기는 이어졌다. 문 대통령은 그해 6월 30일 CSIS(미국 전략 국제문제 연구소) 전문가 초청 만찬 연설에서 “사드 배치에 관한 한국 정부의 논의는 민주적 정당성과 절차적 투명성이 담보되는 절차에 관한 것이다. 이것은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우리 정부에 대단히 중요하다”고 말했다. ‘촛불집회’가 민주주의를 바로세운 획기적 사건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이어 “촛불혁명은 대통령으로서의 나의 출발점” “촛불혁명 요구에 화답하는 게 나의 책무” “촛불혁명이 세계 광장민주주의의 모범”이라는 등 ‘촛불’ 얘기를 거듭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작년 9월 미국으로 건너가 UN총회 연설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조선DB

7월 1일 미국 동포 간담회에서는 “조국의 새 정부는 해외에서도 함께 촛불을 들어준 동포 여러분의 염원으로 출범했다”며, 나흘 뒤 독일 동포 간담회에서는 “촛불혁명 이후에 여기 독일에서도 한국에 대한 평가가 많이 달라졌는가”라고 했다. 문 대통령은 그해 11월 필리핀·인도네시아를 방문할 때도 동포들에게 ‘촛불’ 얘기를 했다.

두 달 뒤, 세계시민상 수상과 유엔총회 참석을 위해 다시 방미했을 때도 문 대통령의 연설은 ‘촛불의 향연’이었다. “애국의 결의는 지난겨울 맨해튼과 뉴저지 거리 곳곳에서 촛불집회로 다시 타올랐다” “한국 국민은 촛불혁명을 통해, 헌법의 절차를 통해 국민의 뜻을 배반한 대통령을 파면했다”는 등 촛불 언급이 이어졌다. 유엔총회 연설에서는 “평창(올림픽)이 또 하나의 촛불이 되기를 염원한다"며 “여러분과 유엔이 촛불이 되어 주길 바란다”고도 했다.

‘촛불’ 언급은 올해 2월 개최된 평창 동계올림픽에도 옮아갔다. 문 대통령은 지난 1월 17일 진천국가대표선수촌을 방문해 “지난겨울 (국민들은) 그 추운 밤 길바닥에 앉아 촛불을 들면서 ‘나라다운 나라’ 만들기를 염원했다”며 “치유의 올림픽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2월 9일 개회식 사전 리셉션 연설에서는 “우리는 지난겨울 공정하고 정의로운 나라를 위해 촛불을 들었고, 이번 동계올림픽을 준비하면서 공정함에 대해 다시 성찰하게 됐다”고 말했다. 같은 날 개회식 인사말에서는 “(우리는) 지난해 평화롭고 명예로운 촛불혁명으로 민주주의의 역사를 새롭게 쓴 대한민국 국민이다. 그동안 평창 동계올림픽을 평화의 제전으로 만들기 위해 정성을 다해 왔다”고 했다.

시정연설·보고대회·기자회견도 ‘촛불’ 一色


국민과 의회, 언론에 국정 내용을 소개하는 공식석상에서도 문 대통령의 ‘촛불’ 사랑은 계속됐다. 그는 작년 8월 17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공식 출범은 100일 전이었지만, 사실 새 정부는 작년 겨울 촛불광장으로부터 시작됐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3일 뒤 역시 ‘취임 100일 기념’ 대국민 보고대회에서도 “국민께서 간접 민주주의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그래서) 정치가 잘못할 때는 촛불집회처럼 직접 촛불을 들어서 정치적 의사 표시를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작년 11월 1일 예산안 관련 국회 시정연설에서 “세월호 광장과 촛불집회는 지난 세월 우리 사회의 부조리와 모순을 한꺼번에 드러낸 공론의 장”이었다고 표현했다. 올해 신년 인사말에서도 “촛불혁명은 전 세계를 경탄시킨 세계사적 쾌거”라며 “촛불혁명이 우리 외교의 힘이 되고 있다”고 ‘촛불’의 위력을 강조했다. 며칠 뒤 신년 기자회견에서는 “내년(2019년)은 ‘대한민국 건국 100주년’”이라며 “임시정부를 수립한 그때부터, 촛불을 들어 새 정부를 출범시키기까지 대한민국은 국민의 힘으로 여기까지 왔다”고 말했다. 구한말 임시정부 수립을 통한 독립운동과 2016년 광화문 촛불집회를 동일선상의 역사적 사건으로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2017년 11월 1일 오전 문재인 대통령이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2018년도 정부 예산안 관련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조선DB

국무회의, 수석·보좌관회의 같은 세부 국정을 다루는 자리에서도 ‘촛불’이 강조됐다. 문 대통령은 작년 12월 “(2017년이) 나라다운 나라를 만드는 해가 돼야 한다는 게 촛불정신”이라고 말했다. 올해 1월과 2월에도 “촛불혁명을 통해 보여준 우리 국민의 높은 시민의식” “(이번 평창올림픽은) 촛불집회 등으로 힘들었던 국민께 모처럼 즐거움과 위안을 주는 치유의 올림픽이 됐다”는 등 ‘촛불’을 다시 꺼내들었다. 집권 1년을 목전에 둔 지난 5월 8일 국무회의에서도 “추운 겨울을 촛불로 녹였던 국민의 여망을 받을어 쉼 없이 달려온 1년이었다”고 회고했다.

‘촛불집회 1주년 기념 메시지’ 발표하기도


‘촛불집회 기념’을 목적으로 하는 메시지를 SNS에 공개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오늘 ‘촛불집회 1년’을 기억하고 촛불의 의미를 되새겨본다”고 말했다. 이하 전문이다.

〈촛불은 위대했습니다.
민주주의와 헌법의 가치를 실현했습니다.
정치 변화를 시민이 주도했습니다.
새로운 대한민국의 방향을 제시했습니다.

촛불은 새로웠습니다.
뜻은 단호했지만 평화적이었습니다.
이념과 지역과 계층과 세대로 편 가르지 않았습니다.
나라다운 나라,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요구하는 통합된 힘이었습니다.

촛불은 끝나지 않은 우리의 미래입니다.
국민과 함께 가야 이룰 수 있는 미래입니다.
끈질기고 지치지 않아야 도달할 수 있는 미래입니다.

촛불의 열망과 기대, 잊지 않겠습니다.
국민의 뜻을 앞세우겠습니다.
국민과 끝까지 함께 가겠습니다.〉

文 정권의 '촛불' 민심론, 올바른 국정 방향인가?

이처럼 문 대통령이 여러 연설문에서 거듭 강조하는 '촛불 중심'의 국정 운영은 옳은 일일까. 강원택 서울대 정외과 교수는 지난 1월 29일 '조선일보' 칼럼에서 "2016년 말의 촛불집회는 민주화 30년을 보내면서 아직 해결되고 있지 않은 우리 사회의 여러 가지 고질적인 병폐를 넘어서야 한다는 시대적 요구를 담고 있었다. 그런 점에서 문재인 정부가 적폐청산에 나선 건 이해할 수 있다"면서도 "(촛불정신에 의거한) 지금의 적폐청산은 마땅히 가야 할 길을 잃은 채 헤매고 있다"고 한계를 지적했다.
 
2017년 8월 15일 오전 문재인 대통령이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72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다. 사진=조선DB

김대중 '조선일보' 고문도 같은 달 16일 칼럼에서 "문 정권이 대한민국의 정체성까지 건드리며 전(前) 정권의 기본 정책을 깡그리 뒤집고, 전 정권 사람들의 뒤를 캐면서 과속 질주에다 역주행까지 하는 '자신감'의 배후에는 촛불이 있고 70%의 여론조사 결과가 있다"며 "촛불은 여전히 타고 있는가. 무릇 모든 정권과 권력이 그랬듯이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다"라고 일침을 가했다. 그의 논평이다.

"'문재인 정치 8개월'에 받아든 성적표에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 사람들 가슴에 아직도 촛불이 타고 있을까? 나라의 안보는 갈수록 불안하고 실업자는 늘어나며 국민의 삶은 조금도 나아질 기미가 없다. 정권을 잡은 사람들은 촛불의 위세를 몰아 헌법도 바꾸고 사회·문화·교육 등 제반 분야의 제도도 다 바꾸는 데 혈안이 되고 있다. (...) 오늘의 현실이 과연 그들의 촛불 초심(初心)에 부합하는 것인지 회의하는 사람들은 다시 생각해야 한다. 우파인지 좌파(左派)인지 굳이 스스로에게 딱지를 붙일 필요는 없다. 나라가 안전하고 대한민국의 정체성이 온전한지 그것만을 생각하면 된다."

윤평중 한신대 정치철학과 교수도 같은 달 12일 칼럼에서 "과연 촛불은 정권을 바꿨고 세상을 변화시켰다"면서도 "국리민복(國利民福) 실현은 미래의 과제로 남았다. 촛불 이후, 내 삶은 나아졌는가"라고 자문하길 국민들에게 촉구했다.

글=신승민 월간조선 기자
입력 : 2018.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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