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 가운데 박정희 대통령과 코드가 가장 잘 맞은 사람은 현대그룹의 정주영이었다. 가난한 농군의 아들로 태어나 어려운 시절을 거쳤고, 그러면서도 담대한 발상으로 그 지지리도 가난했던 나라의 한계를 넘어 세계와 역사를 보았다는 점에서 두 사람은 공통점이 많았다.
정주영 회장 타계 20주년을 맞아 고인을 추억하는 책이 나왔다. 일종의 대담록 형식으로 된 전기다. 저자가 《매일경제》 편집국장, MBN 대표이사 등을 지낸 경제기자 출신임을 생각하면 당연한 구성이다. 저자는 자신이 직접 정주영 회장과 그 측근들에게서 취재한 내용들을 바탕으로 하면서 정 회장의 자서전 《이 땅에 태어나서》를 비롯해 기존에 나온 책들도 참고했다.
거북선이 그려진 500원짜리 지폐를 보여주면서 영국 A&P 애플도어 찰스 롱바텀 회장을 설득해, 바클레이은행장 앞으로의 추천서를 받아낸 이야기, 한편으로는 조선소를 지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배를 함께 지은 이야기, 사우디아라비아의 주베일산업항 수주전 이야기 등은 익히 아는 얘기들이지만, 다시 읽어도 가슴이 뛴다. 1970년대 초 정주영 회장이 박정희 대통령을 직접 설득해 ‘자동차 엔진주물공장 일원화 정책’을 뒤집었다는 이야기도 흥미롭다. 저자는 이 책에서 처음 밝히는 비화들이 적지 않다고 자부한다.
책을 읽다 보면 지금은 사라져가고 있는, 소명의식에 바탕을 둔 그 시대의 열정과 순수함이 느껴진다. 정주영 회장의 좌우명은 ‘일근천하무난사(一勤天下無難事)’였다고 한다. 그런 정신을 가진 리더와 삶의 자세가 그리워지는 시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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