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건지섬에는 빅토르 위고가 있다. 노르웨이 오슬로에는 뭉크가 있다. 헝가리 부다페스트에는 프란츠 리스트가 있다. 남프랑스 아를에는 고흐가 있다. 라부 여인숙 다락방의 곰팡이 악취는 생과 사를 넘나들었던 고흐의 마지막을 여실히 보여준다. 작가의 시선은 한 공간에서 시작된다. 그 공간과 가장 어울리는 인물, 그의 행적을 차분히 좇는다. 그것이 무려 588페이지로 묵직한 권석하의 《두터운 유럽》을 읽는 방법이다. 영국에 살고 있는 칼럼니스트인 권석하씨는 영국의 정치, 역사, 문화, 건축을 다양하게 공부해 예술문화역사 해설사 공인 자격증을 갖고 있다. 유럽 문화권 전반에 대한 글을 쓰고 있는 그가 유럽 대중 인문서를 썼다.
 
  저자의 예술 작품을 대하는 태도는 재밌다. 가령 뭉크의 작품을 얘기할 때 뭉크의 작품은 단순히 테크닉으로 판단할 수 없는 소재를 선택하는 안목에서 이미 결판난다고 본다.
 
  그가 소개하는 인물은 빅토르 위고, 루벤스, 멘델스존, 안토니오 비발디, 바그너, 도스토옙스키 등 우리가 흔히 아는 이들이다. 저자가 풀어내는 이들 위인들의 얘기는 수박 겉핥기식의 얄팍한 지식이 아니라 묵직하고 깊이가 있다. 1장에서는 예술가의 삶 속에 예술을 바라보는 감성이 느껴진다. 2장에서는 정치, 종교 등의 다양한 역사 속 인물과 인연 있던 지역을 탐색한다. 3장은 도시에 집중하는데, 책을 읽으면서 마치 그곳의 아름다운 자연 정취를 느끼는 듯한 생생함이 전해진다. 챕터 말미에는 주요 인물의 어록을 발췌해 담았다. 책을 읽다 보면 유럽의 역사란 하나도 우연으로 이뤄진 것이 없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여행의 방법을 조언하는 대목도 있다. 오랜 시간 영국에 거주한 저자가 전하는 일종의 ‘팁’이다. 여행이란 간단한 백팩 하나로 언제든 훌쩍 떠날 수 있다는 것을 잊어버린 우리에게 해외여행을 간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할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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